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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만드는 건 쉬워졌는데, 돈은 안 된다

만드는 속도와 버는 속도는 다른 문제다

만들기는 진짜 쉬워졌다

올해 들어 만든 것만 해도 꽤 된다. PTE 시험 준비 서비스, 유튜브 자동화 도구, 생활 대시보드, 블로그. Claude Code한테 말 몇 마디 하면 하루 만에 MVP가 나온다. 예전 같으면 주말 내내 붙어야 할 걸 점심 먹고 와서 끝낸다.

20년 개발자인 내가 AI 도구까지 쓰니까 속도가 미쳤다. 머릿속에 있는 걸 코드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날 저녁에 배포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신나서 이것저것 만들었다.

근데 돈은?

수익: 0원

정확히 말하면 0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투자한 시간 대비 수익을 계산하면 그냥 0이라고 부르는 게 솔직하다.

만드는 건 1일이면 된다. 근데 사람들이 와서 쓰고, 돈을 내게 만드는 건? 그건 1일로 안 된다. 1개월로도 안 된다.

마케팅, SEO, 고객 응대, 온보딩 개선, 이탈 분석, 가격 정책. 이 중에 AI가 뚝딱 해결해주는 건 하나도 없다. 아니, 정확히는 AI가 도와줄 수는 있다. 근데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맞는지는 시장만이 알려준다.

"뭘 만들 것인가"가 진짜 문제다

AI 시대에 개발 능력의 가치가 떨어졌다고들 한다. 맞다. 코드 짜는 능력 자체는 이제 희소하지 않다. 비개발자도 앱을 만든다.

그러면 뭐가 남나?

"뭘 만들 것인가"를 아는 능력.

이건 코드를 잘 짜는 것과 완전히 다른 근육이다. 사람들이 진짜로 돈을 내고 쓸 만한 문제를 찾는 것. 그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지 판단하는 것. 기존에 어떤 해결책이 있고, 내 게 왜 더 나은지 설명할 수 있는 것.

나는 20년 동안 코드를 잘 짜는 근육만 키웠다. "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근육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회사에서는 누군가가 기획서를 줬고, 나는 그걸 구현했다. 그게 개발자의 일이었다.

근데 혼자서 돈 버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나여야 한다. 이게 진짜 어려운 부분이다.

AI는 실행의 민주화지, 판단의 민주화가 아니다

요즘 "AI로 누구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다. 만드는 건 진짜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근데 이 말을 뒤집으면 이렇다. 만드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된다.

AI가 민주화한 건 실행이다. 코드를 짜고, 디자인을 만들고, 서비스를 배포하는 것. 이 영역의 진입장벽이 사라졌다.

하지만 판단은 민주화되지 않았다. 어떤 시장에 들어갈지, 어떤 고객을 타겟할지, 가격을 얼마로 잡을지, 언제 피봇할지. 이건 여전히 경험과 감각과 실패의 영역이다.

나는 지금 이 판단의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늦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결론 같은 건 아직 없다. 나도 답을 찾는 중이니까.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AI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뭘 만들어야 돈이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AI가 답해주지 않는다. GPT한테 "수익 나는 SaaS 아이디어 알려줘"라고 물으면 그럴듯한 답이 나온다. 근데 그걸 그대로 만들면 돈이 될까? 안 된다. 그 아이디어는 이미 1만 명이 같은 질문으로 받아봤다.

돈이 되는 건 결국 내가 직접 겪은 문제, 내가 잘 아는 영역, 내가 끈질기게 파고들 수 있는 주제 안에 있다.

AI는 삽을 줬다. 더 크고 빠른 삽을. 근데 어디를 팔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

나는 아직 삽질 중이다.

0jin 서명

20년차 개발자. AI 시대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